욕망의 늑대와 공포의 족쇄 – 인간 본성에 대한 단상
나는 늘 이런 질문을 품게 된다.
인간은 본래 선을 지향하는 존재일까?
혹은 고통을 피하고 욕망을 따르는 존재일까?
이 질문은 철학사 내내 반복되어 온 고전적인 물음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선
더욱 날카롭고 현실적인 의미로 되돌아온다.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면서 탐욕을 숨기고,
누군가는 공존을 외치면서도
독점과 배제를 일삼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인간은 고통을 벗어나 충족을 향해 움직이는 성향이 있고,
도덕이 없다면 어디로 튕길지 모르는 욕망의 존재다.
이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나의 시선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충족될 수 없는 의지’,
니체가 말한 ‘도덕을 넘어선 욕망’과
나는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선(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모든 인간이 과연 선을 향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도덕이 결핍된 욕망은 방향을 잃은 힘이다.
그것은 추진력인 동시에 파괴력이며,
그 파괴의 끝에는 종종 자기 자신이
무너지는 결과가 기다린다.
나는 인간이 단지 욕망의 존재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인간은 공포의 기억을 가진 존재다.
그 공포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야망과 욕망이 만들어낸
참사에 대한 집단 기억이다.
우리가 지금 이 정도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인간이 본래 선해서가 아니라,
파괴의 결과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고,
공포는 인간의 반성이다.
이 둘 사이에 선 인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흔들리고,
다시 자신을 묻는 존재다.
나는 그렇게 본다.
공존은 그런 존재들이 만들어낸
섬세한 균형의 산물이다.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욕망의 늑대를 인식하고
공포의 족쇄를 잊지 말아야 한다.
https://senior-space.tistory.com/30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삶의 중심
“고독은 위대한 정신의 운명이다.” 인간은 늘 외롭다. 특히 나이 들수록 고독한 시간이 더 늘어난다 여기 우리들에게 고독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준 철학자가 있어서그의 말을 소개한다.“고
senior-space.kr
'삶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걱정은 미래를 바꾸지 못하지만 현재를 망친다 — 장자와 법정 스님께 배우는 삶의 지혜 (0) | 2025.05.02 |
---|---|
말 없는 공감의 시대를 꿈꾸며 – 텔레파시 기술과 공존의 윤리 (0) | 2025.04.12 |
공존의 철학 – AI와 공존하는 인간은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0) | 2025.04.06 |
이름을 붙인다는 것 – 식어가던 삶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 (3) | 2025.04.01 |
고단한 날들, 그래도 삶을 사랑한다 (2) | 2025.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