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당의 신도는 아니다.
미사에 참여한 적도,
내부에 오래 머문 적도 없다.
하지만 오금동 성당은
언제부턴가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가장 자주 마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그 앞을 돌고,
옆길을 따라 성당의 벽을 지나친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건 풍경이 아니라 관계구나.
어쩌면 나는
성당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밤의 성당은
낮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높은 첨탑 위의 네 개의 창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눈동자처럼 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불빛을 머금고
색을 더 선명히 띄운다.
그 빛 속의 형상들은
하나하나 내가 품은 기도처럼 느껴지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에는
어떤 축복을 주는 느낌이다.
그 매력에 이끌려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성당을 올려다보면,
건물은 마치 높은 하늘로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낮의 성당은 조금 다르다.
햇빛 아래 붉은 벽돌은
차분하고 따뜻한 표정을 짓는다.
기둥과 벽 사이로 비치는
멀리의 건물은
마치 두 개의 액자 속에 담긴 그림 같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성당 담벼락에 기대 선 목련은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알려준다.
그림자마저 또렷한 봄날,
나는 그 벽에
마음을 기대고 있었다.
성당의 이곳저곳은
요즘 건물처럼 획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면면이 다르게 느껴진다.
‘웅장함, 엄숙함, 고요, 평화’
그런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마 건축가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 옆,
도시의 하루가 흘러가는 와중에도
성당은 늘 변함없는 자세로 서 있다.
어느 날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 그림자와 함께,
또 어느 날은
비 내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불빛과 함께.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어쩌면 이곳은
내가 가장 자주 마음을 기댄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택시에서 내릴 때면
습관처럼 말한다.
“오금동 성당 앞이요.”
언젠가부터
내 하루의 언어 속에
‘오금동 성당’이라는 단어는
습관처럼 스며들어 있다.
내가 우기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우린 정말 우정을 다져가고 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금동 성당은 내게
등대이자, 나침반이자, 친구다.
https://senior-space.tistory.com/82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순간 – 오금동에서 마주한 작은 기억
밤 산책 중이었다.골목을 따라 조용히 걷던 중,고개를 들자 조용히 불을 밝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낯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풍경이었지만,밤은 전혀 다른 모습
senior-space.kr
'여행과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 속 작은 봄 — 피어오른 다섯 송이의 이야기" (1) | 2025.04.30 |
---|---|
Yellow City – 도시 속 노란색이 하는 일 (0) | 2025.04.22 |
소나무, 빛으로 깨어나다 – 거여동의 밤 풍경 (0) | 2025.04.15 |
봄, 도시를 피우다 – 거여동 꽃길 산책과 저녁의 기억 (3) | 2025.04.12 |
성당 앞 목련, 봄이 왔다는 가장 순수한 신호 (2) | 2025.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