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공포 – 삶을 일으키는 힘

만샘 2025. 6. 23. 00:34

식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 앞에 선 한 인간의 뒷모습. 공포와 마주한 존재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장면. 사진 생성: Jooriank, AI 이미지 합성 (퍼스널 프로젝트용)

공포는 흔히 피해야 할 감정으로 여겨진다.
직면했을 때, 그것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회피하게 하며, 때로는 정신과 육체를 마비시킨다.
공포의 크기가 지나치면 절망에 빠지거나, 극단적으로는 삶의 의지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공포는 단지 불안이나 스트레스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삶을 일으키는 힘, 방향을 바꾸고 존재를 다시 구성하게 하는 내적인 에너지가 숨어 있다.
우리가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극복 가능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면
공포는 단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막연한 불안, 그 이름을 붙여야 할 때

중년 이후의 삶은 많은 것을 잃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체는 예전 같지 않고, 주변의 관계도 시나브로 변화한다.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막연한 두려움이 삶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온다.
그 두려움은 종종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이’ 두려운지보다, 그냥 ‘모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 감정은 때로는 건강에 대한 염려로, 때로는 삶의 무의미함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단순히 ‘공포를 느낀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공포를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감각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와 창의적인 발상이 샘솟는다.
공포는 때로 생각의 벽을 허무는 자극제가 된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까 봐 두렵다.”
이 문장은, 막연한 공포를 하나의 의지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로 규정했다.
그 말은 곧,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공포는 단지 삶을 위협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삶을 더욱 명료하게 비추는 내면의 빛이기도 하다.

공포는 나태한 자아를 흔드는 채찍

삶이 고요하고 편안할 때, 우리는 쉽게 안주한다.
무기력이나 나태는 대부분 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렇기에 공포는 우리가 멈춰 서 있는 자리를 흔들고,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걷게 만드는 채찍이 된다.

공포가 없다면 준비도 없다.
미래가 두렵기 때문에 저축을 하고,
병이 무서우니까 운동을 시작한다.
관계가 깨질까 두려우니까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처럼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대비하게 하고, 대비는 곧 삶의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뒤 식단을 바꾸고,
운동 루틴을 정하며, 아침을 달리 살아간다.
공포는 때로 충격처럼 찾아오지만,
그 충격이 삶의 태도 전체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문명을 움직인 것도 결국 공포였다

개인만이 아니다.
인류 문명도 공포를 통해 발전해 왔다.

  • 전염병의 공포는 백신과 위생 개념을 만들었고,
  • 전쟁의 공포는 국제협약과 평화체계를 낳았다.
  • 기후 위기의 공포는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윤리를 세웠다.

2020년, 팬데믹은 전 세계를 정지시켰다.
우리는 공기 중 바이러스를 두려워했고, 이웃과의 접촉조차 꺼려야 했다.
하지만 그 공포는 새로운 방식의 연대와 예방 문화를 만들었다.
마스크, 손 씻기, 백신 접종, 거리두기.
공포는 우리를 갈라놓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의 감각을 일깨우기도 했다.

공포가 문명을 위협했지만,
그 위협에 대한 대응은 오히려 더 정교한 시스템과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감수성을 낳았다.
전쟁이 무기를 낳았다면, 공포는 협정을 낳았다.
기후 변화가 자연을 파괴했다면, 공포는 협약을 만들었다.

개인의 삶이나 사회 전체나, 공포는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우리를 흔들지만, 끝내는 우리를 움직인다.

대비는 희망이 아니라 공포에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는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며 삶을 준비하기도 한다.
여행을 계획하고, 가족 간의 유대를 위해 외식하거나,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자신을 가꾸는 일에 힘을 쏟는다.
사회 역시 문화를 통해 축제나 스포츠 같은 활동으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가장 강하게 움직이는 감정은,
무언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그 감정이 지나치게 크면 삶을 무너뜨리지만,
적당한 불안과 스트레스는 오히려 삶의 동기와 추진력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유스트레스(Eustress)**라고 부른다.
해로운 디스트레스(distress)와는 달리,
유스트레스는 우리를 각성시키고, 성장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만든다.

공포라는 감정도 이와 같다.
의학에서 백신이 질병을 막기 위한 예방제로 작용하듯,
공포도 잘 다루면 우리 삶의 예방제가 될 수 있다.
만약 공포를 일정한 크기로 '캡슐화'하여
정기적으로 마주하고 소화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은 불안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각성의 자극제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공포는 ‘파괴의 감정’이 아니라,
삶을 형성하고 정리하는 내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
몸을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 이유.
그 깊은 곳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있다.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기보다,
스스로를 일깨우는 자극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훨씬 정돈되고, 한층 더 성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공포는 방향이다

우리는 누구나 공포라는 감정 앞에서 두렵다.
그 두려움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흔들릴까 봐서이기도 하고,
앞으로 닥칠 어떤 변화에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공포 앞에서 우리 자신을 순한 양처럼 무릎 꿇게 두지 말자.
그 감정을 오히려 일어나게 하는 힘, 저항의 동력으로 삼자.
두려움은 삶을 주저앉히려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정직한 안내자일 수 있다.

공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감정은 삶을 무너뜨리는 부정적 에너지가 아니라
삶을 일으키는 힘, 커다란 생명의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

 참고자료

  1. 한스 셀리에 (Hans Selye) – 스트레스 개념의 창시자
    • The Stress of Life, McGraw-Hill, 1956
      → 스트레스에는 해로운 디스트레스와 유익한 유스트레스가 있음을 구분.
  2. 매튜 리버먼 (Matthew D. Lieberman) – 뇌와 감정의 관계
    • 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Crown, 2013
      →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이 공포와 불안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3.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 기후 공포에 대응한 국제 협력 사례
    • https://unfccc.int/
      → 인류의 불안이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 정책 등을 이끌어낸 구조 설명.
  4. WHO 세계 보건기구 – 전염병의 공포와 보건 시스템의 진화
    • https://www.who.int/
      → 팬데믹 이후 전 세계의 위생, 백신 정책 변화 관련 리포트 활용 가능.
  5.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 공포와 통치의 관계
    • Discipline and Punish, 1975
      → 공포가 사회적 질서 형성에 어떤 구조적 역할을 하는지 사유의 토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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